[아름다운 우리말] 괴로우나 즐거우나
사는 게 참 어렵다는 말을 합니다. 인생이 고통의 바다라는 말도 합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폐업하는 가게가 속출하고, 취업을 못 하는 젊은이가 넘쳐납니다. 노인의 빈곤 문제나 천정부지의 주택 가격을 보면 출생률이 왜 낮은지 설명 안 해도 알 수 있습니다. 결혼을 안 하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모든 것이 괴로움 천지입니다. 우울증이 만연하고, 자살률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이야기일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은 사실 철학의 시간이고, 종교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괴로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가 중요한 문제가 되어 있는 겁니다. 하지만 세상은 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기도 합니다. 고통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철학이겠으나 그보다 쉬운 방법은 눈앞에 널려있습니다. 마약이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아마도 마약을 구하기 쉽거나 외국의 사례처럼 대마초가 합법화된다면 너도나도 마약에 의존할 겁니다. 마약이 아니어도 고통을 잊기 위한 방법도 많습니다. 향락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습니다. 괴로움을 이기려고 시작한 일이 더 큰 고통을 불러옵니다. 저도 해결책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답답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고통은 세상의 문제이면서 곧바로 저의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이 고통스러운데 저만 행복한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합니다. 가족이 불행한데, 저만 웃을 수는 없습니다. 가족 중 한 명만 우울해지면 가족은 어두운 가족이 됩니다. 한 가족이 어두우면 그 사회가 어두워집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우울과도 괴로움과도 연결됩니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괴로움에 모든 신경을 지나치게 모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지만 괴로움 밖에 있는 즐거움을 보기 위해서 노력도 덜 하고, 해결책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에서 철학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철학이나 종교라는 말이 거창한데 그저 곰곰이 생각한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골똘하게’라는 표현도 좋습니다. 괴롭다는 생각을 곱씹어 보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의 원인이나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골똘히 생각해 보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모습을 ‘기도’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염불’이라고도 합니다. 다 좋습니다. 내 괴로움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괴로움에서 나올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말은 몇 가지 단서를 보여줍니다. 사는 게 쉽지 않기에 우리말에는 고통이 앞에 옵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가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괴로움이 먼저입니다. ‘진자리 마른자리’라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진자리’가 먼저 나옵니다. ‘미우나 고우나’라는 표현도 비슷합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괴로움이 먼저였습니다. 안락한 엄마의 뱃속을 떠나 괴롭게 비집고 세상으로 나온 겁니다. 삶에는 늘 이렇듯 괴로움의 순간이 먼저 옵니다. 괴로움이 지나야 다음 단계가 나타납니다. 괴로움은 그대로 끝이 아닙니다. 저는 괴로움 다음에 오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괴로움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괴로움 뒤에는 즐거움이 기다립니다. 진자리는 마른자리로 갈아주면 됩니다. 늘 우리가 진자리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괴로움 속에 있을 때는 다음에 올 즐거움을 기다리고 꿈꾸어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괴로움의 순간에 즐거움을 향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지금 내가 겪는 괴로움의 원인을 찾고, 집착을 버리고, 즐거움을 향하는 겁니다. 이는 우리 삶에서 늘 일어나는 일입니다. 살아온 경험을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화에서 시지프스가 산꼭대기에 돌을 굴려 올립니다. 그런데 돌은 다시 굴러떨어집니다. 매일 돌을 굴려 올려야 하니 얼마나 괴로울까요? 하지만 생각이 즐거움을 향하면 세상이 바뀝니다. 돌이 굴러떨어지고 나면 비로소 쉴 시간이 생깁니다. 돌아가서 가족과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길 수 있습니다. 돌을 굴리는 시간 말고, 돌을 굴리지 않아도 되는 시간에 집중하는 겁니다. 괴로움에 집중하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괴로운 시간 뒤에 오는 즐거움에, 뽀송뽀송한 마른자리를 기대하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괴로움 다음 진자리 마른자리 사회 문제